봄 날씨에 취해 꽃구경한다고 대구까지 다녀왔다.
뭐에 꽂히면 뽕을 뽑는 나. 사지 멀쩡하고 무릎이 튼튼하니 망정이지, 버스타고 서울을 나가는 등산은 1달에 1번이 맞는 것 같다. 잊지마 내 신분 월급 노예라는 사실을. 전주에 천국의 계단 계룡산을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 등산이라 그런지 서울 올라올 즈음엔 머리가 띵했다. 평일 등산이었고, 주말 내내 쉬었으니 망정이지 다시는 못 갈 미련한 도전이었다. 물론 비슬산 자체는 참 아름다운 곳이다.
이번에도 역시 #알레버스를 이용했다. 꽃이 피고 놀러가겠다는 마음이 들 즈음이면 어디나 그렇듯 성수기다. 성수기의 뜻은 수요가 많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가격도 올라갑니다 (...) 그래도 크게 차이가 나진 않는다. 1~2천원 (가는 비에 뚫리는 내 지갑) 정도 더 비싼 듯. 무튼 버스 왕복 1인 4만 8천원에 예약했다. 평일 일정이라 생각보다 치열하진 않았다.
출발 당일, 일부 비가 올 수 있다는 예보가 있어서 조마했다. 사실 산악회 소속이라면 어지간한 비에 일정이 취소되는 일은 없을텐데, 엔트리를 위한 서비스라 그런지 기세가 있다 싶으면 알아서 취소가 된다. 다행히 전날까지 별도 연락이 없어 무사히 탑승했다. 보통은 풀인데, 아마 놓친 팀이 일부 있는 걸로 보인다.
이번에 동행한 친구는 산을 좋아한다기보단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 먹기 좋아하는 이라(...나?), 이번 등산을 위해 트래킹화를 새로 장만했다. 지난 번 불암산을 갔다가 러닝화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나이기에 옆에서 딱따구리처럼 쪼아댄 덕일까. 여사님 트래킹화 사면서 가방까지 풀로 장만하시고 함께 대구로 향했다.
역시 서울에서 대구는 꽤나 멀다. 버스 전용차로를 타고 풀악셀로 달려도 3시간 반은 넘게 걸린 듯하다. 계속 자고, 또 자서 목이 아플 지경에야 도착했다. 갈 때가 이정도에 산행 후 돌아오는 길은 꽤나, 정말 몸이 꽤나 힘들었다. 기운이 쭉쭉 빠지는 느낌 (막걸리 마셔서일지도 모름 헤헤)
중간 휴게소를 한 번 들르고 11시가 넘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 주 주말에 참꽃 축제가 열릴 예정이라 그런지 미리 평일부터 나들이 오신 할매들이 가득했다. 완전 현장체험학습인 줄 알았잖아. 해 뜬 지 한창이라 날도 밝겠다, 얼결에 할매들 따라 걷다가 코스를 이탈할 뻔했다. 짧은 다리를 건너 좌측 겹벚꽃이 우거진 언덕으로 향한다.
오늘의 코스는 유가사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도성암과 도통 바위를 지나, 천왕봉을 찍는다. 그리고 참꽃 군락지를 지나 대견사 방향으로 향하여 하산하는 식이다. 안내 받은 코스는 대견사에서 셔틀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는데, 막상 셔틀 정류장을 보니 꽃 구경 온 사람들이 대거 대기중이었고, 시간도 널널해서 직접 걸어서 하산했다. (내 도가니)
아마 첫 도입부가 워낙 푸르르고 화창했던 덕에 오늘 산행도 그러할 줄 알았던 나(...). 웬열 잠깐 걷고 나니 돌 밭이다. 또 다시 떠오르는 계룡산의 악몽. 돌도 돌이고 계단 없이 내 짧은 다리에 비해 큰 바위를 오르려니 이게 바로 고강도 스텝퍼가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꽤나 잘 오른다고 자부하던 친구도 표정이 담백해지기 시작했다.
천왕봉을 향하는 길은 사실상 중턱이랄게 없다. 한 번에 빡- 오르는 식이다. 정상인가? 싶은 곳에 도착하면 10분 이내로 정상에 도착한다. 실제 천왕봉 비석이 위치한 곳은 정상이라기보다 광야(...)에 가깝다. 비석 옆으로 팔각정이 2개 정도 있고, 여기저기 넓찍한 바위가 많아서 도시락 먹기 좋다.
※ 비슬산 군립공원에는 마땅히 식당이라할만한 곳이 없다. 편의점도 딱히 없다. 무인 자판기가 휴양림 입구에 일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차를 갖고 주변 식당으로 향할 것이 아니라면, 도시락과 간식은 필수!
그 주에 비가 오다가 말다가 지맘대로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산행 내내 날씨가 꽤 좋았다. 정상에서 바람으로 땀을 식히며 도시락을 먹다보니 또 속이 든든해진다. 사실 산행하면서는 긴장이 유지되는 것도 있고해서 탄수화물보단 수분 보충이 되는 야채나 당 보충을 위한 초콜릿 (군것질) 종류가 좋긴 하다. 굶을 순 없으니 싸온 도시락을 먹다 보니 피크닉 분위기도 나고 좋구나.
뭐 미세먼지 수치는 높았지만(...) 봄에 국내 어느 곳에서든 맑은 날은 이제 랜덤 뽑기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미세먼지 속에 몇 시간을 걷다 보니 산행이 끝났을 즈음엔 눈도 가렵고 이모저모 먼지 샤워한 나였지만 눈은 즐거웠다.
다시 또 짐을 챙겨들고 출발. 정상 다음은 하산인가? 참꽃 군락지까지 가는 길이 하산한다는 느낌은 잘 안났는데 나중에야 깨달았다. 응 군락지까지는 하산길이 아니다. (군락지에서부터가 제대로 된 하산이다. ^^)
빠르게 걸으면 1시간 이내로 군락지에 도착한다. 능선을 따라 걷는 식이다. 군락지에 도착하니 참꽃(진달래)이 군데 군데 보였다. 아직 모든 면이 다 피어난 건 아니었지만 언제든 올 수 있는 게 아니니 이 정도도 어떠랴.
※ 군데군데 말벌이 날아다니는 소린가 싶었는데 드론이 있었다. 에엥? 군락지 모습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드론이 촬영하고 있었다. 비슬산 군락지를 갈 생각이라면 아래 링크로 미리 전날 비슬산 전경을 확인해볼 수 있다.
친구와 나란히 연분홍 진분홍으로 맞춰 입고 왔다. 보람이 있나? 사진 보니 그런 것 같기도. 나이에 비해 20년을 앞선 취미를 갖고 있다는 지인의 말을 떠올리며 여기저기 사진을 남겼다. 나 이 곳에 왔었노라 바이브.
듬성 듬성 피어있긴 했지만 또 실제로 보면 잘 모르겠다. 꽃구경은 사진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게 제일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적당히 둘러보다가 대견사 방향을 향해 걸었다. 이제 집에 슬슬 가야지하면서. 꽤나 빨리 움직였는지 시간이 한두시간 남아있었다. 셔틀을 탈까하다가 사람이 너무 많고 대기가 한창이었다.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길래 먹으면서 둘러보니 배차가 빠른 것 같진 않다.
버스 안내를 하는 직원에게 하산 코스를 물어보고 (이미 지나왔다는데, 정류장 도달하기 조금 전에 옆으로 빠지는 계단이 있단다.) 돌아갔다. 한시간 반정도 잡고 내려오면 되는 정도의 코스였다. 확실히 하산하는 코스가 맞았다, 돌도 있고 계단도 있고. 이 코스로 올라오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았는데, 역시 있었다. 휴양림에서 출발하는 코스였다.
휴양림 출발 코스는 정상에 도달하기 전 참꽃군락지를 지나는 지라 좀 버겁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대견사 근처에도 봉우리가 있다. 그래서 휴양림 출발시 거의 대견사까지 가고 군락 보고 내려오는 듯하다. 셔틀로 내려올 수 있기도 하고.
암괴 구간도 지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몇 번 넘어질 뻔한 서로를 걱정하며 걸음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어찌저찌 시간 안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하면서 내려온 것같다. 산길이 끝나고 도로를 꽤 걷는다. 뒤로 걸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 드디어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그 앞 편의점에서 어묵 국물도 팔고, 식혜와 부침개도 판다. 제대로 된 매점 느낌은 아니고 축제 때문인지 간이로 운영하는 듯했다. 비슬산 막걸리가 있길래 구입. 너무 시원한 음료가 마시고 싶어서 냉장 칸에 있던 한 병을 샀다. 4천원. 남은 도시락을 안주로 한 잔씩 나눠마시고 버스에 탔다. 서울서 같이 버스 타고 온 분들 몰골이 다 똑같다. 후에 셔틀 타고 오신 분들은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서 탔다고 하시니, 걷기로 했던 우리 선택이 다행이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어느새 시간은 밤 9시를 향하고 있었다. 와 진짜 남도로 내려가는 산행은 엄청난 일이구먼요. 그럼에도 평일에 회사 하루 쉬고 멀리 다녀온 꽃 구경, 꽤나 재미있었습니다. 이상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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